미디어센터

  • 메인페이지로
  • 미디어센터

  • 인사이드 스토리

인사이드 스토리

<가자지구의 평화> 기원 미사

  • 등록일2025.10.22
  • 조회수8

 

9월의 마지막 날,

서울교구 민화위와 정평위는

<가자지구의 평화>를 염원하는 미사를 봉헌했습니다.

이날 아시아 분쟁지역과 연대 활동을 벌이는 (사)아디의 이동화 바오로 사무국장은 현재 가자지구 상황을 전해주었습니다.

민화위 부위원장 정수용 신부의 강론도 공유합니다.

-----------------------------

[강론]

가자지구 평화를 위한 미사 2025. 09. 30. 명동주교좌 대성당

찬미 예수님

지금부터 30년 전 서울대교구에는 남북의 교류와 협력

그리고 한반도에 평화를 위해 활동하는 민족화해위원회가 설립되었습니다.

그리고 창립 후, 첫 번째 화요일이었던 1995년 3월 7일,

이곳 명동대성당에서는 <민족의 화해와 일치를 기원하는 미사>가 시작되었고

이번 주 화요일인 오늘까지 모두 1483차 미사가 봉헌되고 있습니다.

오늘 우리는 한반도의 평화만이 아니라,

우리가 기억해야 할 이 시대의 특별한 지향을 두고 이 미사를 봉헌하려 합니다.

오늘 우리는 가자지구의 평화를 염원하는 미사를 드리고 있습니다.

약 2년 전인 2023년 10월 7일,

팔레스타인 무장 정파 하마스와 이스라엘은 무력 충돌을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이 갈등은 2년 동안 여러 양상으로 변하며 지금까지 지속되었는데,

최근에는 팔레스타인 거주지역인 가자지구에 많은 이들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습니다.

가자지구는 이스라엘의 서쪽, 이집트의 북쪽에 위치한 지중해 연안 지역입니다.

남북 길이로는 약 40km 정도이고 동서 구간은 약 10km 정도로 그리 크지 않는 땅입니다.

서울시와 비교해본다면 서울의 절반보다 조금 큰 정도입니다.

서울에는 총 25개의 구가 있는데, 이 중에 한강 이남에 있는

강서-양천-영등포-금천-관악-동작-서초-강남-송파-강동구 등 10개의 구보다

조금 큰 정도라고 볼 수 있습니다.

우리가 사는 서울이 워낙 인구밀도가 높기에 한강 이남의 서울 인구는 약 460만명 정도인데,

가자지구는 높은 아파트나 빌딩도 없으면서

비슷한 면적에 약 230만 명 정도가 거주하고 있다고 합니다.

서울을 생각해보면 한강 이남 지역에 병원이 몇 개나 있을까요?

대형 병원으로만 따져봐도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아산병원부터 해서

삼성병원, 성모병원, 이대목동병원, 중앙대병원 등 여러 개가 있고

그보다 규모가 더 작은 병원들까지 포함하면 수십 수백 개에 이를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 가자지구에는 전체 의료시설 36곳 중 운영 중인 병원은 단 9곳에 불과하다고 합니다.

대부분 전쟁과 공습으로 인해 기능이 크게 저하되었고,

의료시설, 연료, 장비, 인력이 모두 부족해서 그마저 정상적인 기능을 기대하기 어려운 상황입니다.

병원뿐 아니라 가자지구는 지금 거의 모든 건물이 파괴되었습니다.

학교도 관공서도 주거시설도 심각한 손상을 입었습니다.

거주민의 90% 정도가 집을 떠나 피난 생활을 하는 난민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 가자지구가 이스라엘과 접해 있는 동,남,북 삼면은

모두 높이가 6m가 넘는 총길이 65km의 분리 장벽으로 막혀있고,

서쪽은 지중해로 막혀있는 사실상의 고립된 공간입니다.

하늘만 뚫려있어 마음대로 들어갈 수도, 빠져나올 수 없는

사실상의 감옥과 같은 곳에 230만의 사람들이

건물 90%의 폐허 속에 갇혀 있는 상황입니다.

그리고 이곳에 이스라엘은 지상 작전을 지속하며

사실상 학살 수준의 전쟁 범죄를 지속하고 있는 것입니다.

지난 2년의 전쟁으로 팔레스타인 사람들 6만 6천여 명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그리고 이들의 대부분은 전투요원이 아닌 민간인이고,

민간인 가운데에서도 여성과 어린이의 비중이 압도적으로 높습니다.

살아남은 이들도 집과 마을을 떠나 피난을 떠나있지만,

가자지구는 동서남북 모두 막혀있기에 어디 안전한 곳으로 이동할 수도 없습니다.

외부에서 들어가는 식량과 식수, 그리고 의료품이 절대적으로 부족하기에

분쟁이 길어질수록 굶어서 죽는 이들이 속출하고 있다는 소식마저 들립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 군은 가자지구 최대 도시인

북부의 가자시티에 지상군을 투입하고 있습니다.

대외적으로는 하마스를 굴복시키고

이들에 의해 납치당한 이스라엘인들을 구조하겠다고 말하지만

이미 국제학계와 국제기구들은 팔레스타인 사람들 모두를 겨냥하고 있는

<가자지구 제노사이드>, 즉 <집단학살> 단계를 넘어섰음을 경고하고 있습니다.

지난 9월 초, 세계적 집단학살 전문 연구자들로 이뤄진 <국제집단학살 학자협회>는

이스라엘이 가자지구에서 벌이고 있는 일을 집단학살로 규정하는 결의서를 채택했습니다.

유엔의 500명의 활동가들도 가자지구 전쟁을 집단학살로 규정할 것을 촉구하는 등

이미 문제의 심각성은 여러 곳에서 경고하고 있습니다.

일부 헌신적인 국제기구 활동가와, 기자, 그리고 의료인들이

가자지구의 참상을 알리고 구호작업에 힘쓰고 있지만

이들 역시 이스라엘 공습에 활동을 이어가지 못하고 피난하거나 목숨을 잃은 상황에서

이제 가자지구에는 자식을 잃은 부모의 울음과 비명 소리 만이 끊이지 않고 있습니다.

서울교구 민화위와 정평위가 가자지구의 평화를 염원하는 미사를 드리기로 정하고

저는 강론을 맡은 후로 매일 국제 뉴스를 찾아보는 것이 일상이 되었습니다.

매일 신문 국제면에서 가자지구 소식을 스크랩 했고,

포털 검색창에서 가자지구를 검색해봤습니다.

그런데 폭력이 일상이 되었고 비참함이 연속되어서일까요?

더 큰 희생과 더 큰 폭력이 나올 때만 잠깐씩 뉴스가 될 뿐

가자지구의 소식은 그리 자주 전해지지 않았습니다.

우리 사회에 여러 중요한 일들이 많지만, 그래서 기억해야 하는 일들이 너무도 많지만

가자지구의 소식에 우리 스스로 무덤덤해져가는 것은 아닌지 돌아보게 됩니다.

오늘 우리는 전례력으로 성 예로니모 성인의 기념일을 보냅니다.

그는 초기교회인 300년대 중반에 태어나 수덕 생활과 은수 생활을 하며

성경 번역에 매진했던 성인입니다.

그는 히브리어와 희랍어로 기록된 성경을 라틴어로 번역해 성경 보급에 큰 업적을 남겼습니다.

예로니모 성인이 남긴 유명한 표현은

바로 “성경을 모르는 것은 그리스도를 모르는 것이다.”라는 말입니다.

이 말은 신앙인이 성경을 읽고 공부하고 묵상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를 나타내는 말로 자주 표현됩니다.

그런데 저는 이 말을 조금 바꾸어 오늘 기억하고 싶습니다.

“이웃을 모르는 것은 그리스도를 모르는 것이다.”라고 말입니다.

비록 지구 반대편에서 벌어지는 일이지만

가자지구의 고통에 우리가 함께 아파할 수 있다면

그것은 우리가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실천하고 있는 일이 될 것입니다.

반대로 지금 이 시대에 벌어지고 있는 집단학살을 모르고 지나친다면,

그래서 이웃의 고통과 무관하게 살아간다면

우리도 자신 있게 그리스도를 안다고 말하기 어려울 것입니다.

친애하는 형제 자매 여러분

많은 사람들이 이러한 비참한 현실에서 교회에 물어옵니다.

우리는 너무 힘이 없는데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냐고 말입니다.

어떻게 지구 반대편에서

아무런 결정권이 없는 우리가 이스라엘을 멈추어 세울 수 있냐고 묻는 이들이 많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사실 그리 많지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기도할 수 있고, 관심을 가질 수 있습니다.

함께 아파해 할 수 있고, 함께 분노할 수 있고, 함께 슬퍼할 수 있습니다.

작은 연대는 그 자체로는 너무나 보잘것 없어 보이지만,

그보다 큰 연대를 만들어 낼 수 있습니다.

그렇게 작은 연대가 모이고 모여서 우리는 거대한 구조적인 악을 부술 수 있습니다.

우선 관심을 이어가고, 나의 기도 지향에서 기억하고, 뉴스를 찾아보는 것부터 해볼 수 있습니다.

더 많은 이가 관심을 가질 때 가자지구의 평화를 만들 수 있고

그러기 위해 우리는 오늘 이곳에 모인 것이며, 하느님께 자비를 청하며 기도를 봉헌합니다.

오늘 우리는 우선 우리 스스로가 이웃의 아픔에 함께 아파하고

함께 울어줄 수 있는 사람들이 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세상의 평화는 힘센 몇몇 지도자가 깨기도 하고 만들기도 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우리의 관심과 기도가 그 정치인들의 선택을 바꿀 수 있음을 기억합니다.

그리고 지금도 고통과 불안 속에서 살아가는

가자지구 사람들과 연대하겠다는 마음으로 오늘 이 미사를 봉헌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가자지구의 평화를 염원하며 잠시 묵상하시겠습니다.